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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9일 개최영남민요연구회가 주최주관하는 제19회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가 9일 청송군 현서면 하당마을 귀운당에서 열린다. 내년이면 20주년를 맞이하는 '아리랑, 영남의 소리'를 재조명하기 위해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영남아리랑과 민요'이다. 이 행사는 전승활동 20주년을 준비하며 ‘아리랑, 그 넘어’를 준비한 것이 사진과 함께하는 행사이다. 이 시대 모든 활동은 사진 기록에 존재한다. 이 시대적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취지는 시의적절하며. 아리랑 공연의 사진 작품화는 기대를 갖게 한다. 홍 순익 사진작가는 "영남민요연구회가 펼치는 영남민요나물노래, 방아타령, 지점소리, 어부사, 실제 상여와 상여소리 등 잊혀져가는 과거 토속민요를와 함께 재현되는 옛사람들의 때몯은 호미, 지게, 상여놀이 무대는 정겹고 특별하다. 다른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전통의 무게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런 계기로 이 사진전을 갖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공연은 대구의 주산 팔공산을 노래하는 '팔공산아리랑', 왕산 허위 의병장의 의병정신을 기리는 구미의병아리랑, 영남의 전래민요,방아타령 맷돌질소리, 화전놀이, 상여소리 등이 퍼포먼스와 같이 펼쳐진다. 영남민요연구회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과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 등재는 물론 영남지역 민요의 현재적 가치 현시(顯示)에 기여하는 우리나라 아리랑 전승단체의 상징이다. 이를 이끌어 온 배경숙 회장은 아리랑 전승자이며 연구자이다. 학계에서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개최를 이끌어 온 영남민요연구회 19년 활동 역시, 아리랑 역사의 분명한 위치를 갖고 있다는 평이다. 다음은 대구시민이 사랑하는 대구의 주산 팔공산을 아리랑에 실어 노래한 '팔공산아리랑'사설이다. 배경숙 작사 작창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팔공산아리랑을 불러나보세(후렴) 1. 달도 밝아 휘영청 팔공산 우뚝하구나 대구의 명산이요 한국의 명물이라 2. 우짤라요 우짤라요 이정을 우짤라요 정주고 가신님 이내속은 우짤라요 3. 금호강 잠긴달은 잡힐 듯 말듯하고 동화사 세종소리 끊길 듯 말듯하네 4. 대구야 팔공산 얼마나 좋아서 아리랑 타령에 얹어서 노누나 5. 골이 깊어 쉬어가나 수태골 저 구름아 날 두고 가신님 못잊어서 머무느냐 6. 오면오고 가면갔지 우짜라꼬 이라능교 당신 성화 못 견디어 내사마 못살겠네 배경숙 회장은 "아리랑 전승과 영남 지역 전래민요의 무대화를 목적으로,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영남지역 토속민요와 함께 옛날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디딜방아, 절구방아, 삼삼는 모습, 그리고 다듬이질, 물레질, 힘들었던 시절 유일한 아낙의 쉼터인 화전놀이, 동네의 슬픔을 함께하는 상여꾼들, 땅다지는 지점소리, 나물노래, 어부의 그믈질 모습 등을 사진으로 남기고, 널리 알리고자 특별 기획을 하였다"라고 밝혔다. 내년은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제20회를 맞는다. 청년의 탄생, 새로운 변신을 기대하며, 특히 대구의 근대인물 이재욱을 팔공산아리랑에 담아 세상에 드러낸 배경숙 회장의 전승활동에도 새로운 전기를 맞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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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희국악예술단, '2023하동세계차엑스 대한민국 명창대전' 개최한다지난 4일 1,200년 역사를 이어온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 하동에서 '세계 차 엑스포'가 개막했다. 하동야생차박물관 및 하동스포츠파크 일원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한달동안 개최된다. 하동군과 '손양희국악예술단'은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한다. 명칭은 '하동세계차엑스 대한민국 명창대전'(05.11-12.)과 '하동세계차엑스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05.27.)을 개최한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은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를 맡고 창원 지역을 비롯해 경상남도와 타 시도의 축제, 기념비적인 행사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2009년부터 창원어린이국악단,'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단장과 지회장을 손양희 단장이 맡고 있다. 특히 25년째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25년 구독자인 손양희국악예술단의 활동과 전국국악경연대회 진행에 대해서 국악신문 기미양 객원기자가 손양희국악예술단 손양희단장을 한달동안 전화와 방문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손양희 국악예술단 설립목적과 전승활동 Q. 손양희 국악 예술단 설립 목적은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민족예술의 정수 국악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몸으로 느끼고 배우며, 나아가 우리 음악을 이끌어갈 전문 국악인의 밑거름인 차세대 명창과 명인들을 육성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Q.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언제 조직되었나요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창원에서 1996년 제1회 창원 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를 주관하면서부터 조직되었다. Q. 손양희국악예술단 소개해주세요.. 설립 목적, 전승활동, 회원수.전승활동 A. 손양희국악예술단은 1995년 손양희국악교습소로 시작하여, 2007년 손양희국악예술단으로 거듭났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은, 자체 기획공연과 시, 도, 국가 공모사업을 기본으로 실행하면서, 각 시군의 축제나 국가 공식 기념일 행사에 초청을 받고 전국 순회공연을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을 비롯 미국, 유럽 등 20여개국 해외 순회공연을 하며 폭넓게 공연 활동을 하는 전문 국악공연단체이다. 또한 후진양성과 계승발전을 위해 규칙적인 전승교육 활동에도 30여 년간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올해로 26회차가 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통해, 인재 양성발굴에 핵심 사업 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예술단체이다. 회원은 100여 명과 예술단원은 25여 명이 활동한다 Q. 초대회장, 역대회장은? A. 초대 대회회장은 1996년 당시 창원국악협회장이셨던 故 박미숙선생을 필두로 노키아티엠씨 이재욱 회장, 공민배 전창원시장, 현, ㈜부경 김찬모회장으로 연결되어 국악발전에 도움을 주고 계신다. 26년이 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Q. 1996년 제1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가 올해는 26회가 되는데, 언제부터 손양희 회장이 이어오고 계시나요 A. 1996년 제1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창원 국악협회장의 별세로 존립의 기로에 선 국악경연대회를, 2년 지난 1998년 제2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25살밖에 안된 제가 맡아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작년 11월까지 제25회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초반기 국악 불모지 창원에서 이 국악경연대회를 알리기 시작할 때, 국악신문 김호규 사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Q.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가 올해 26년 돐을 맞이하는데, 자랑 좀 해주세요. A.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는 창원이 공업도시라, 예술 장르 특히 국악 분야는 아직도 열악한 편이다. 하여 고른 발전을 꾀하며 종합대회를 유치했다. 종합대상은 국회의장상이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교육부장관상, 도지사상, 창원시장상, 도교육감상, 시교육장상 등 판소리, 기악, 민요.가야금병창, 무용, 풍물... 5개부문을 각파트에 5분의 권위있는 심사위원을 모시며 투명한 대회를 만들어 왔다. 그 결과 문화관광부에서 3년마다 실시하는 평가에서 작년(2022년)은 B+ 등급과 그 3년 전에는 A등급을 받아 공명정대하고 내실있는 우수대회로 평가받았다. Q.최근 서울에서 하동차엑스포 알리기 행사를 했는데..오셨나요? 특별한 행사가 있었나요 A. 그날 행사가 이미 잡혀 있어서 참석못했다. 특히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유명한 국민배우 ‘국민 아버지’ 최불암 씨를 행사 중 2023하동세계차엑스포 명예 홍보대사로 임명하는 뜻깊은 위촉식도 가졌다는 소식을 방송을 통해 들었다. '2023하동차엑스포'와 '2023하동차엑스포 대한민국 명창대전' Q. '2023하동차엑스포' 소개해주세요. A. 산수가 아름답고 인심 좋은 하동... 1,200년 역사를 이어온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 하동이지요. 하동야생차박물관 및 하동스포츠파크 일원에서 오는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2023하동세계차엑스포가 개최된다. Q. 전국에서 산수가 아름답가로 유명한 하동의 유래에 대해 자랑 좀 해주세요. A.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은 하동의 아름다움을 ‘호중별천(壺中別天)’으로 표현하며 ‘동쪽 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신선이 옥베개를 밀치니 순식간에 천년이 되었네’라고 극찬했다. 천년이 지난 오늘날 바로 세계적 차(茶)의 주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Q. 이번 손양희국악예술단에서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개최하는 국악경창대회 취지는 A.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23 대한민국 명창대전'과 '2023 전국청소 년국악경연대회'을 개최한다. 이는 세계가 주목하는 엑스포장에는 신명나고도 우수한 우리 전통음악인 풍악이 빠질 수 없으므로, 단순한 경연대회가 아닌, 축하공연 같은 경연대회를 통해 우리음악의 신명, 전통성을 하동을 찾은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함으로 엑스포장을 더욱더 활기차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꾀한다. 손양희 명창 국악계 입문과 국악활동 Q.국악계 입문은 어떤 계기로 언제 들어오셨는지요. 스승은? A. 부산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3년에 한국무용에 입문하였고, 초등학생때부터 노래를 잘 부른다고 인정 받아, 합창부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한국무용에도 두각을 나타내며 열심히 하였으나, 고2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유한 가세가 기울자, 9년 동안 받아온 무용교습은 포기해야 해서 절망적이였다. 그런데 그즈음 한국국악협회 창원지부에서 판소리 무료 강습회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찾아가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판소리가 나를 다시 소생시켰다. 故 선동옥 선생님(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입문하여 지금껏 소릿꾼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故 선동옥(수궁가), 故 이명희(흥보가,춘향가), 故 한갑주(적벽가), 성준숙(심청가)선생님들께 이수를 받았다. 2008년 12월에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제 9호 판소리 '수궁가' 전수조교로 지정되었다. Q.손양희 선생님 전국경연대회에서 상을 많이 타셨는데, 가장 큰 상을 받은 때는 언제인가요 A. 2017년 판소리 입문 32년만에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5년 제16회 대구 국악제에서 판소리 부문에 참가하여 종합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후 12년만에 받은 상이다. 이때 가장 공력을 많이 들였을 때, 받은 상이다. Q. 창원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악단체로 손꼽히는 손양희국악예술단 자랑 좀 해주세요. A. 국악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의 학부 출신 또는 재학생을 회원이 많다. 그만큼 젊고 활력 넘치는 전문 국악단체이다.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김선희, 타악과 풍물로 전국 국악 경연 대회에서 종합 대상인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송기혁, 가야금 전공의 김수아 등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부터 겨울방학 여름방학 기간 ‘2008 국악학교’를 개설하여 창원과 주변 국악인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지속해오고 있다. 그래서 창원은 물론 경남에서는 널리 알려진 국악단체이다. Q. 가장 뜻깊고 추억에 남는 공연은 A. 2003년 10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기이자 여류 문인으로 꼽히는 황진이를 소재로 한 창극 '황진이'를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국립 창극단 수석 단원 등 주요 출연진과 연출, 시나리오, 음악 등 주요 제작진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주인공은 창원 지역의 소리꾼을 대표하여 제가 황진이 역을 맡았죠. 대한전통예술보존회 경상남도 지회가 제작한 최초의 경상남도 지역 창극이었다. 2006년에는 창원 성산 아트홀 소극장에서 '제2회 손양희 판소리 '수궁가' 완창 발표회'를 가졌다. 2009년 창극 '토끼야 수궁가자' 에서 창원에서 연출자를 구하지 못해서 연출과 주인공을 맡았다. '황진이' 역과 '별주부'역을 맡은 때가 저희 소리에 대한 정열을 태웠던 시절인가 보다. 수궁가 완창발표회가 큰 동력이 되었다. 이후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Q. 기억에 남는 해외공연은 A. 2011년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왓에서 한국의 아리랑 콘서트’를 공연하였다. 우리가 갔던 곳은 캄보디아의 우리나라의 불교인 조계종이 세운 고아원 겸 보육시설 '아름다운나라'이다. 그해 여름 창원어린이국악단 14명의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지리산 산공부(합숙) 대신, 봉사 차원으로 15일 일정으로 갔다. 원장님은 조계종의 스님이셨고, 직원들도 한국분들이 고생하고 계시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우리는 캄보디아 학생들과 교류 및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풍물과 민요를 가르키며 함께 공부하고 신나게 뛰어 놀았다. 우리 창원어린이국악단 학생들이 신명나는 공연도 선보여주는 등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신명을 잘 전달하고 왔다. 이는 학생들에게 봉사하는 마음과 우리 국악의 뿌듯한 자긍심을 가지게 했던 큰 계기로 기억된다. 양명창은 어려운 청년기, 국악에 입문하면서 판소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일찌기 20대 중반에 제2회 창원전국악경창대회를 맡으면서 국악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대구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명실공히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가무악에 타고난 재능으로 판소리·풍물·전통무용 등을 섭렵하고 공연 연출까지 해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초창기 2003년 뮤직컬 형식 창극 작품을 맡았지만 창원에서 국악 분야 연출자를 찾지 못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의 전승활동 Q. 하동 출신으로 유명한 국악인 누구신가요 A. 여러분이 계셨지만, 손꼽히는 두분을 소개합니다. 하동 악양에 '명창 유성준, 이선유 판소리 기념관'이 있는데, 유성준(1873~1949)명창은 판소리 근대 5대명창중의 ‘동편제의 제왕’으로 불리어졌으며, 하동 악양면 신대마을에서 활동하시다 세상을 떠나시고, 이선유(1873~1949) 명창은 송우룡 명창과 김세종 명창에게 사사했고, 최초로 판소리 다섯마당 창본 '오가전집'을 펴냈으며 진주권번의 소리사범으로 활동하셨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두 분의 명창이 하동을 기점으로 폭넓게 활동을 하셨고, 이 두 분을 기리는 판소리 기념관이 하동 악약면 있으며, 판소리 전승발전을 위해 중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Q.그동안 창원에서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A. 첫째로는 판소리를 30여년간 후학을 가르키며 차세대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체 기획공연 및 타 지역 축제 기념비적인 행사이 공연과 시, 도, 국가의 다양한 공모사 업 지원 및 선정으로 경남을 비롯하여 국내외 등 수 많은 순회공연을 하였고, 26년째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며 인재 발굴과 대중화에 힘쓰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Q. 가장 좋아하시는 민요는 A. 우리의 민요는 웬만하면 다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육자백이', '흥타령'을 특히 좋아한다. 구성지면서 질펀한 우리네 삶이 녹아있어 절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Q.한국국악협회 창원시지부, 하동지부와 같이 국악활동을 하시나요 A. 초창기 한국국악협회 창원지부 창단 맴버였으나, 현재는 협회 활동은 하지 않고, 개인적이지만 공적인 일을 하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국악협회 하동지부는 풍물놀이, 판소리, 한국무용 등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국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저변을 확대하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Q. 하동에는 어떤 축제가 있나요. 그 축제에서 판소리를 많이 알리고 계시죠 A. 하동 송림 백사장과 섬진교에서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및 다리밟기 행사,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 먹점마을에서 산골 매실 매화 축제, 제17회 화개장터 벚꽃 축제, 하동군민의 날 기념식, 새해맞이 공연, 하동 야생차 문화 축제 등에 초청 받아서 판소리를 알리고 있다. Q.코로나 3년간 경창대회 치루시면서 힘드신 부분은 A.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방법에 처음에는 우왕좌왕 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고 큰 어려움 없이 대회를 치뤘다. 예상보다 많은 지원자가 참가해주었다. Q. 20대 중반부터 쉬지않고 30여 년이 넘게 공적 국악활동 단체를 이끄시면서 힘드셨던 점, 보람이 되신 점은 A. 국악단체를 이끌어 간다는게 다른 단체도 그렇겠지만, 경제적으로 녹녹치 않아 어려움도 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단원들과 더불어 함께 하면서 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아서 슬기롭게 해결하며 걸어 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지역에서 후원자들도 차츰 생겨나면서 공고히 자리를 잡아가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Q. 국악발전을 위해 한 말씀하신다면. A. 우리 경남에는 대학에 국악과도 없고, 시립.도립 국악예술단체도 없다 보니, 국악발전에 악순환이 되고 있다. 특히 영남민요는 동부민요로 몰아가서 딱히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서울까지 가서 경기민요를 배워서 이수증을 받고 학원간판을 내걸고 있다. 이렇게 국악발전이 타 시.도에 비해 열악한 현실을 못 벗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회원들과 창원시립 또는 도립국악단 창단을 희망하며 오늘도 묵묵히 걸어 간다...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의 전승활동을 통해 경상남도 창원 지역 국악 발전의 현황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올해 26회를 맞이하는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를 통해 국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뒤에는 손양희국악예술단의 노력이 숨어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 받아서 이번 하동군과 함께 하동차엑스포 대한민국 국악명창대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가 된다. 손양희 2012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 후보. 2003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한승호 '적벽가' 사사. 2005 대구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 이명희 '흥보가' 사사 2020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성준숙 '심청가' 사사 경상남도판소리보존회장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총집행위원장(26회) 경상남도무형문화재 판소리전수관 외 다수 출강 도지정전문예술단체 ‘손양희국악예술단’ 대표 (2016~2022) 동국대학교(한국음악과-판소리) 외래교수 (2005~2008) 마산창신대학교(음악과-판소리) 외래교수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판소리 학사 및 석사 졸업 2017 제28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2016 제24회 전국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6 제25회 땅끝해남 전국국악경연대회 명인부 대상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 2016 제19회 서편제 보성소리축제 명창부 우수상 '전남도지사상' 2015 제3회 미주 한국국악경연대회 '지도자상' 2006 제16회 대구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종합대상 국무총리상' 2005 제2회 DELPHIC GAMES(문화올림픽) 한국대표(판소리) '단체우수상' 수상(말레이시아 쿠첸) 2003 제21회 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명창부 최우수상 '전남도지사상' 2000 제2회 여수 전남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부문 명창부 '우수상' 2000 제18회 광주특장부문 판소리전국대회 특장부 '우수상' 1995 제6회 대구 전국국악제 '금상' 1989 제8회 창원 고향의 봄 축제 전국민요경창대회 '장원' 1985 제30회 부산 영남무용제 '최우수상' 1979 제1회 영남지구 무용콩쿨 '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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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문경새재’도 아리랑?삼목 作 "선생님, 제가 보낸 카톡 사진 보셨어요? 점촌 버스터미널 사거리에 걸린 프랭카드인데요, 내일 강연 안내인데, 아리랑연합회 김** 선생 문경에 온다는 내용만 있어요. 아리랑 강연 내용은 없고요. 점촌 시내 곳곳, 문경읍 면 단위에는 200개나 부쳤다고 합니다. 재밌네요.” 문경시가 주최하는 시민 대상 아리랑 특강 안내 프랭카드. 내용이 아리랑을 강의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아리랑 연합회 김**가 문경에 온다는 식의 표현이라서 어색하고 재미있다고 기찬숙 선생이 알려온 것이다. 이 시기 문경아리랑은 물론 아리랑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20012년 6월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이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한 강연이었다. 강연 주제는 아는 이들이라면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내용이다. 70분간의 강연은 다음의 세 문장으로 요약이 된다. "모든 아리랑의 후렴에 나오는 ‘아리랑고개’는 바로 ‘문경새재’입니다. 문경새재가 바로 '아리랑 고개'라는 말입니다. 문경은 아리랑의 고향입니다.” 이 요지의 강연을 계기로 문경지역에서는 소위 ‘문경아리랑 붐’이 일어났다. 당시 송옥자 회장이 문경아리랑을 알려오고 있었지만, 시청과 문화원과 일반인들에게 "문경에도 아리랑이 있다”는 인식이 번지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2020년까지 문경지역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행해진 사업과 행사를 보면 그야말로 획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망하게 이뤄졌다. 정선이나 밀양 또는 진도 지역에서 20여년간 이뤄진 것들이 한 시장의 5년 임기 내에 이뤄진 것이다. 대충 추려도 이럴 정도이다. 첫째는 문경새재아리랑제‘가 대규모, 정례화, 대외 행사로 확대, 개최 둘째는 국립아리랑박물관 건립을 공식화, 국회 정책발표회, 아리랑 가사 서예 작품화 셋째는 문경새재아리랑과 다듬이 소리 브랜드화 행사(광화문 천명 다듬이 행사) 넷째는 문경시 ‘아리랑도시’ 선포 다섯째는 경복궁 중수 후의 아리랑과 문경새재아리랑의 연결고리 학술 담론화 여섯째는 헐버트 채보아리랑과의 연결, 독일 홈볼트 아카이부 독일포로 고려인 유리콜라이 아리랑 음원 전시 및 관련자 초청 행사 일곱째는 최초의 통속아리랑 H. B. 헐버트 채보 아리랑악보비 건립 여덜째는 문경시장 사할린아리랑제 동행 및 해외 연주자 초청 공연 아홉째는 민요학회 주최 문경새재아리랑 주제 학술대회 등 개최 열 번째는 전승단체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와 아리랑문화단체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양립 이상의 과정에는 문경시청이라는 관官의 지나친 주도로 전승주체가 소외되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10여 년간 점령하였다는 부정적인 평가, ‘아이디어만 빼 먹는 관’이라는 구태도 구설에 올랐다. 이 중심에 삼목이 있었다. 삼목은 이 아리랑 공사公事에 스스로 "공도 있고 과도 있다.”고 평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기간에 드러나게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크게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문경새재아리랑’의 존재와 그 위상이 정립 또는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즉, 문헌과 음반 기록으로 그 실체를 밝혀냈다는 사실이다. 1896년 H. B. 헐버트가 기록한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오/ 아르랑 얼싸 배 띄어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라는 대표사설은 이후 ‘구아리랑’에서부터 1926년 밀양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까지 전승된다는 사실에서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다. 즉, 경복궁 중수(1865~1872)7년 기간에 문경의 새재에서 나는 특산물인 박달나무가 공사장 도구 자루로 다 베어져 나간다는 상실감을 표현한 것이고, 또한 이 새재는 경복궁 중수 기간 삼남의 부역꾼들이 반강제적으로 오가며 넘었던 고개이다. 여기에서 ‘새재’는 ‘고개’로, 고개는 ‘고난’의 상징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곧 문경새재아리랑의 존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삼목은 1985년 헐버트 기록을 발굴, 소개하였다. 이후 계속해서 1905년 오키타 긴조(㳞田錦城)의 ‘한국의 이면韓國 裏面’ 소재 아리랑 기사, 1925년 동아일보의 ‘박달나무 민요’. 1929년 ‘개벽開闢’의 ‘문경요聞慶謠’, 1930년대 이재욱의 ‘영남민요조사자료’의 문경지역 민요자료 등을 발굴하여 존재를 밝혀냈다. 이러한 문헌 전승을 통한 문경새재아리랑의 존재 확인은 거의 삼목의 몫이었다. 한편 이 시기 더불어 거둔 성과가 또 있다. 그것은 일제시대 발매된 지역 아리랑 음반의 발굴이다. 즉, 1936년 밀리온 레코드사가 발매한 최계란 소리 ‘대구아리랑(1936년)’이 2008년에 발굴되고, 1937년 오케이레코드사가 발매한 서영신 소리 '동래아리랑(1937년)’이 2009년 발굴 되고, 같은 해 '신밀양아리랑(1936년)' 등이 신나라음반 자료실에서 발굴되었다. 이미 장소성을 부여한 강원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대구와 부산의 지명 아리랑이 뒤늦게 발굴됨으로써 다른 지역의 지명 아리랑도 발굴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음반 수집가들에 의해 또는 대학 연구소 음원 아카이브가 주목한 장르는 판소리 명창 음반이나 월남 이상재 선생이나 손기정 선수 같은 역사인물의 육성 음반 등이었다. 지역 아리랑에 대한 관심은 그리 두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특히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전국적인 아리랑 신드롬과 함께 지역 아리랑 음반들에 관심을 보여 발굴되었다. 이에 의해서 ‘경주’, ‘춘천’, ‘문경’ 지명의 아리랑도 음반으로 발매되었으리라는 추정을 하게 되었다. 삼목으로서는 당연한 기대였으며, 국내와 일본 및 해외의 음반 판매사의 싸이트를 주목하고, 1930, 40년대 신문 광고도 살피게 되었다. 2017년 11월 초, 제10회 문경새재아리랑제 개최를 준비하기 위해 문경을 바쁘게 오가던 시기이다. 고속버스가 충주를 거쳐 점촌을 향하는 중에 기 선생 특유의 높은 톤이 들려왔다. 기 선생이 안국동 아리랑연합회 사무국에서 일제시대 신문기사 색인 작업을 통해 ‘아리랑연표’를 작성하다 찾아낸 것이다. "포리돌 음반 광고에 ‘문경새재’라는 것이 나옵니다. 이건 분명 문경새재아리랑인 것 같아요. 왜냐면 오태석과 정남희 반주에 조앵무와 임소향이 부른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분명 이건 문경아리랑 음반입니다.” 나는 문경문화원 일을 보면서도 건성이었다. 마음 한쪽은 빨리 서울에 들어가서 기록을 보고 싶어서 다. "일제강점기 문경아리랑이 음반으로 나왔다?”는 기대는 했지만, 실제 그 존재가 드러날 줄은 몰랐다. 요 몇 년 동안 추정한 것이 실제 현실로 드러난 것이니 신비하기도 했다. 급한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 온 삼목은 기 선생이 출력해 놓은 조선일보 1939년 1월 19일자 ‘포리도루 조선음반 신보’ 광고를 보았다. 분명하게 2월 신보 광고란에 ‘聞慶새재’가 들어있다. 반주자 두 분과 노래한 두 분도 분명히 나와 있다. 다만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없을뿐이다. 그러나 삼목은 확신을 했다. 여러 문헌에서 ‘아리랑’이 붙지 않은 ‘문경요’나 ‘박달나무 민요’가 모두 문경아리랑이었기 때문이다. 1949년 성경린과 장사훈이 펴낸 ‘朝鮮의 民謠’에서도 ‘聞慶새재’로 곡명을 달았는데, 그 가사는 문경새재아리랑이다. 그런데 이 광고만으로는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데, 하나는 실제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기사와는 다르게 광고 게제 일시와는 시점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음반은 발매 되지 않고 광고만 나왔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광고만 나오고 발매는 되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70여년이 지나도록 실물이 확인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삼목과 기 선생은 이 두 가지 의문을 염두에 두고 음반을 찾기 시작했고 관련 기록을 수소문 했다. 이 과정에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매일 색인 검색을 하는 김종욱 선생에게 부탁한 결과 의미있는 자료가 왔다. 그것은 매일신보 1938년 7월 17일자와 9월 25일자 경성방송국(JODK) 국악 프로그램에서 ‘문경새재’가 송출되었음을 확인했다. 여기에 따르면 부른 이는 다르지만 같은 반주자에 의해 방송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음반 발매 여부와는 또 다르게 ‘문경새재’가 국악인들에 의해 연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삼목과 기 선생은 광고자료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음반 존재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발굴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이를 언론에 알리고자 했다. 그러자 기 선생은 "우리가 음반을 찾고 발표해야지 이 자료만 알리면 안된다"라는 의견을 냈다. 이어 "그 음반 찾게 되면 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 기사를 보고 찾았으면서도 마치 자신의 눈이 밝아서 '최초 발굴'이라고 떠들면서 찾았다는 기사를 내는 노략질을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삼목으로서는 누가 찾든 빨리 음원을 확보하여 문경아리랑의 위상을 제고하고, 연구 자료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의견을 달리했다. 드디어 2017년 11월 3일, 문경문화원 고성환 사무국장을 통해 문경매일신문과 대구매일신문에 자료를 공개했다. "문경새재아리랑 전국 확산…방송·음반 발매 기록 발견. 한민족아리랑연합회와 아리랑학회는 2일 문경새재아리랑이 1938년 7월 17일 오후 8시 KBS라디오 전신인 조선방송(JODK)에 방송됐고, 영국의 레코드사가 취입해 음반으로도 내놓았다는 당시 조선일보 기사와 광고를 비롯한 방송자료를 발견해 매일신문에 공개했다.” 기사의 말미는 이렇게 여몄다.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문경새재아리랑은 헐버트 선교사가 서양 악보로 채보하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 1930년대 방송을 타고 임소향이 음반을 낸 이후인 1940년대까지 서울 경기 지역에서 널리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만일 임소향이 월북하지 않았다면 문경새재아리랑은 해방 후에도 전국에서 널리 불렸을 것이다-고 했다.” 이 기사는 ‘문경새재’라는 음반명과 곡명을 아예 ‘문경새재아리랑’으로 특화, 단정하였다. ‘문경새재’는 ‘문경새재아리랑’ 또는 ‘문경아리랑’으로 특정, 검색 키워드로 제시했다는 사실에서 음반이나 기타 문헌에서 문경새재아리랑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했다. 이 기사로 문경과 소장자들에게 전해져 반향이 컸다. 유튜브 ‘정창관의 아리랑’ 운영자 정창관 선생이 공감을 표해왔고,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이만유 회장도 "문경아리랑이 다른 지역 아리랑과 함께 중요한 위치였음을 확인시켜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다. 드디어 기사의 결과가 나왔다. 존재에 대한 기사가 나간지 1년,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면 관장이 소장 자료를 공개했다. 광고 문안과 동일했다. "Polydor X-517-A(10386BF) 南道雜歌 梅花打鈴·聞慶세재 吳太石·丁南希·曺鸚鵡·林素香 伴奏 韓成俊·金德鎭·鄭海時” ‘南道雜歌 聞慶새재’ 불은 라밸의 폴리도루 음반, 너무나 반가운 음반이다. 그리고 2년 후 역시 노재명 관장이 가사지歌詞誌까지 발굴, 공개했다. 획기적인 발굴이다. 이로서 3절의 가사가 분명하게 밝혀졌다. "(중모리)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 구부야 눈물이 난다.아르르르르르 아르르르르르 아라리요.아리랑 장단에 노래허여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가세.이 밭을 매고 저 논 갈아 양친 부모님을 봉양허세.아르르르르르 아르르르르르 아라리요.아리랑 장단에 노래허여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가세.이 물을 건너고 저 산 넘어 우리 님 계신 곳을 찾어가세.아르르르르르 아르르르르르 아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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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곡 100년 역사 기리는 홍난파 가곡제, 26~27일 개최한국 가곡 세계화를 위한 '홍난파 가곡제'가 27일 열린다.사단법인 홍난파의집은 서울시 후원으로 오는 26일에 '울 밑에 선 봉선화야', 27일에 '한국가곡 100년의 노래'를 이틀간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진행한다.100여년 전부터 시대의 희로애락이 담긴 홍난파 작품들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표 가곡을 선곡했다. 첫날은 홍난파 가곡을 중심으로, 둘째 날은 한국 가곡 100년을 기념해 가장 많이 불리고 사랑받는 가곡을 중심으로 선보인다.김봉미의 지휘 아래 소리얼오케스트라 반주로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서울대 교수)이 '고향의 봄'과 '애수의 조선'을, 바수니스트 황윤주(센트럴플로리다대 교수)가 홍난파 가곡 '사랑(장동인 편곡)'을 협연한다.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색다른 무대도 마련했다. 래퍼 정상수와 블리스가 바리톤 김민성과 함께 장동인 작곡가가 편곡한 '고향의 봄'을 가요 버전으로 부른다.이번 공연은 이문태 홍난파의집 대표가 기획하고 소프라노로 한국가곡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활동해온 임청화 백석대 교수가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성악 공연엔 소프라노 임청화을 비롯해 소프라노 유소영, 박소은, 김민희, 강혜명, 김민지, 메조소프라노 신현선과 양송미, 테너 하만택과 이재욱, 김기선, 이정원, 이현, 바리톤 송기창과 박경준, 양진원, 김형삼 등이 출연한다. 카자흐스탄에서 대통령장학생으로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한 테너 누르카낫도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무대에 선다. 어린이노래그룹 작은평화, 난파합창단, 홍난파합창단 등도 함께한다.본 공연에 앞서 양일간 오후 5시30분부터 6시40분까지 콘서트홀 로비에선 홍난파의 대표곡인 '봉선화' 의미를 되새기고자 추억의 '봉숭아 물들이기' 체험 행사도 마련돼있다. 공연에 앞서 관객들이 봉선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봉숭아 물들이기 체험행사도 진행한다. 정희준 홍난파가곡제 준비위원장은 "홍난파가곡과 우리가곡을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음악회를 준비했다”며 "이번 공연이 현 시대에 가곡을 부흥시키고 활성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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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아도위 창립 1주년 기념, 학술토론회를 뒤돌아보며이만유/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위원장 도시마다 역사, 문화, 특색, 성향, 위치, 경험, 기억 등에 의해 그 도시만의 색깔과 이미지가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 수백 년, 수천 년의 삶을 영위해 온 사람들이 유무형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지역이나 도시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2012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2015년 12월 경북 문경시가 ‘문경, 세상의 모든 아리랑을 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아리랑도시 문경’을 선포하였다. 이에 발맞춰 2017년 6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순수 민간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이하 아도위)를 창립하여 아리랑의 연구, 발굴, 보존, 전승, 홍보, 교육, 공연을 통해 ‘아리랑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며 아리랑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금까지 활동해 왔다. 아도위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면서 지난 2018년 7월 30일 ‘문경새재아리랑 정체성과 위상 정립’이란 주제로 ‘아도위 창립 1주년 기념, 제1회 학술토론회’를 개최한 바가 있다. 그 이후 4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문경새재아리랑 부르기 운동', ‘찾아가는 아리랑학교’, ‘기준악보 제정’ 참여, ‘팔도 및 디아스포라 아리랑제’에 주도적 참여, ‘서울아리랑페스티벌’참가 ‘전국 아리랑전승지역답사 탐방’,‘코로나아리랑 창작 및 발표회 개최’ 등 의미 있는성과도 있었지만, 대내외적 요인으로 아직은 미흡하고 할 일도 많다. 그래서 문경새재아리랑이 5천만 모든 국민이 알고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꿈꾸며 4년 전 처음으로 개최하였던 학술토론회 때 가졌던 꿈과 희망이 퇴색되지 않게 분발하고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래 기술하는 2018년 학술발표회 때 필자가 한 인사말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던 대로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헌신적인 42명의 아도위 위원님들과 함께 초심을 유지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여 문경새재아리랑의 새역사를 쓰겠다는 각오를 다져 본다 . 인사말 이번 아도위 창립 1주년을 맞아 지난 일 년을 뒤돌아보며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중 ‘아리랑도시 문경’이 올해 ‘세계아리랑제’를 계획하고 있음에 즈음하여 ‘문경새재아리랑 정체성과 위상 정립’이란 주제로 ‘제1회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의미 있는 날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함께 자리해주신 내외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발표하고 토론할 세부 주제는 ‘문경새재아리랑 정체성과 위상의 재발견’과 ‘축제를 통한 문경새재아리랑의 정체성과 위상 정립’입니다. 주제발표자, 지정토론자, 질의응답에 참여하시는 시민들께서는 아리랑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과 적극적인 참여로 토론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 학술토론회에서 전문가가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리랑의 주인이신 시민 여러분께서 발언하시는 자유토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바를 특히 아리랑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고 아리랑제에 대한 실현 가능한 의견과 조언을 아끼지 마시고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저는 이번 기회에 문경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성공한 축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옛길이 많아 ‘길의 고장 문경’이 될 수도 있고 근대 아리랑의 뿌리로 ‘아리랑도시 문경’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축제는 당연히 축제마다 특성과 목적이 있고 축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보편성과 특이성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리랑도시 문경’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경새재아리랑제’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이라는 보편성과 ‘근대 아리랑의 시원’으로서 문경새재아리랑이 부각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토속민요인 ‘문경새재소리’의 존재와 그 소리가 경복궁 중수 시 한양으로 올라가 경기권에 유행하여 1896년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B. Hulbert)박사가 영문 잡지 코리안 레포지토리 (‘Korean Repository’)에 실은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라는 사설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리랑 채보 기록과 아리랑을 서양에 알리게 된 역사적인 사실에 이어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 영화 주제곡인 본조아리랑으로 이어지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865년부터 7년간 경복궁 중수 시 한양 간 토속민요 ‘문경새재소리’가 문경으로 다시 돌아와 향토민요 아리랑으로 분류되는 ‘문경새재소리 아리랑’이 되고, 다시 통속 민요라고 할 수 있는 ‘문경새재아리랑’으로 된 변천 과정을 겪는 것과 1930년 대구 출신 국문학자 이재욱이 쓴 ‘영남전래민요집’ 의한 ‘경북아리랑’으로 지칭한 ‘문경아리랑’의 존재와 진도아리랑에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라는 사설이 있는 것 등으로 인해 근대아리랑 시원이라 할 수 있는 문경새재아리랑이 문경이라는 지역성을 넘어 확장성을 보인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아리랑고개'는 아리랑과 고개의 합성명사이고 위에 기술한 영남전래민요집은 물론이고 1896년 발표된 헐버트아리랑과 1911∼1912년 일제강점기 총독부 조사 자료에 근거해서 아리랑 고개는 바로 문경새재이다. 라는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의 문경새재아리랑의 정체성에 관한 "아리랑고개론"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문경만이 가진 특이성을 가지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문경아리랑의 정체성과 위상을 확립할 수 있는 축제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문경새재아리랑제는 아리랑의 전승과 보급, 전통문화의 계승과 지역문화로서의 정착, 지역민들의 상생, 대동의 장이 되고 아리랑을 통한 문화적 시민 통합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등 다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문경새재아리랑제’가 소수 아리랑에 관심 있는 주민이나 관광객의 축제로 머무르지 않도록 하고 지역이라는 경계를 넘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팔도 아리랑의 만남과 세계 각국의 교포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 시대에 맞고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하고 단계적 발전과 변화를 통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시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금년도 추진하려는 ‘세계아리랑제’는 시기상조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의욕만 넘치고 앞서간다는 느낌이 들며 문경시민도 문경새재아리랑을 잘 모르고 대다수 국민도 문경새재아리랑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과 부족한 예산, 추진 주체의 불안정 등의 여건에서 세계아리랑제 개최는 관 주도 전시행정의 표출이라는 비난과 우려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수준까지 전승(무형문화재 지정 등), 보급과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 등 나름대로 기반을 조성 후에 추진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면 명실상부한 세계아리랑제는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치고 필요 예산을 확보하여 지금부터 한 3∼5년쯤 후에나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준비할 시간도 짧습니다. 국제 행사를 치를 예산도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점에서 2018년 제11회 문경새재 아리랑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담긴 제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문경에서 천리나 떨어진 먼 곳 진도, 그 진도 사람들이 부르는 진도아리랑 첫 사설에 왜 문경, 새재, 물박달이란 낱말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문경아 새재야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는 이 사설이 전국의 많은 아리랑에서 불리고. 심지어 북한, 해외 아리랑에서까지 불리는 이유는 뭘까요? 이걸 알면 우리 문경새재아리랑의 중요성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아리랑도시'가 아리랑도시답게 되는 그날을 위해 그때그때 유명 인사 몇몇 모셔와 소수 몇 사람들이 여론 수렴 없이 관 주도적이며 비합리적으로 아리랑 정책을 입안 추진함이 아니라 저항·대동·상생이라는 아리랑 3대 정신을 기본으로 아리랑의 주인인 시민들의 목소리를 소중히 생각하고 함께 가는 아리랑도시 문경이 되길 소원하며 오늘 학술토론회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바라본 오늘, ‘아리랑도시 문경’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리랑은 어느 특정인의 것이 아니다. 긴 세월 뿌리를 내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아리랑을 포함하여 그 지역 정체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더구나 많은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이라 하더라도 임기 동안 잠시 그 지역을 대표하고 시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 뿐, 지역이나 도시의 근본이 되는 문화와 역사의 총체인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리랑은 수백 년 이 땅의 주인인 민초들이 그들의 삶을 노래한 것이고 그 안에 그들의 혼이 깃들어 있고 문경 지역의 문화로 고체화되어 있다. 그래서 당연히 아리랑은 문경 정체성의 핵심의 한 요소이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문경의 역사이고 문화이고 뿌리라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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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민요연구회, 25일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선보인다대구에서 대구 근대인물 이재욱의 업적을 기리는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행사가 25일 개최된다. 영남민요연구회(회장 배경숙)은 2005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의 18번째 행사이다. 25일(일) 오후 4시 ‘2.28 기념공원’에서 개최한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는 이재욱의 일대기를 5막으로 보여준다. 유년기 시절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함께 보낸 시인 이상화와 문학적 관계를 보여주고, 청년기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영남민요를 전공하고 중앙도서관 근무하는 시절을,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 장년기는 해방 직전 대구로 귀향하여 도청에서 근무하는 시기의 활동상을 조명한다. 마지막 대목은 짧은 생애 동안에 그가 남긴 영남민요 자료조사의 소중함을 함께하는 무대로 전래민요를 오늘날의 버전으로 현대화한 작품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재욱이 남긴 1930년 기록 속의 영남의 토속민요를 남성 노동요, 여성 연정요로 부각시켜 '생활 속의 민요'로 향유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지게목발소리’를 정종철 외 회원들이, ‘화전노래’를 정종화 외 회원들이 함께 한다. 특히 세 가지 아리랑도 무대에 올려지는데, ‘구미의병아리랑’을 임규익 외 회원들이, ‘팔공산아리랑’을 전체 합창으로, ‘경산아리랑’을 배경숙 외 회원들이 꾸민다. 이외 10여 종의 영남 지역 전래민요가 다양한 전통 절구같은 농기구, 삼베 잣는 물레같은 소도구와 함께 30여 명의 회원들에 의해 펼쳐진다. 행사를 주관하는 영남민요연구회는 17회의 공연을 통해 영남지역 전래민요를 현대적인 무대화 작품으로 선보이며 나름 성과를 이룩했고, 회장 배경숙은 이재욱의 영남전래민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요 공연 기획자이다. 이번 행사에 대해 배 회장은 "이재욱은 어린시절 대구의 대표적인 시인 이상화와 삼촌간이라는 것에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영남민요를 연구하였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재욱의 학문과 민요 연구 성과를 더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영남민요연구회는 2016년 이재욱(1905~1950)을 대구근대문화인물로 선정하는데 기여하고, 그의 주요 업적인 ‘영남전래민요집’을 발굴, 연구를 주도하였다. 이번 공연은 이재욱의 생애와 업적을 타 지역에 알리는 목적으로 그가 조사 기록한 영남지역 아리랑과 민요를 재현하고 보존하기 위한 무대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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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아리랑 도시 문경”에 뿌리 내린 아도위이만유/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아도위) 위원장 문경시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아리랑 도시”를 선포한 지방자치단체다.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로서 우리 민초들이 희로애락을 느낄 때 부르는 노래이며 제2의 국가(國歌)와도 같은 민족의 노래이다. 우리 문경에도 오랜 세월 동안 불리어 왔던 "문경새재아리랑”이 있다. 이 아리랑이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며 실제적 아리랑고개가 "문경새재라”라고 하면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스럽게 생각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이 주장에 대해 근래 학계나 민요학계에서 점차 인정하는 추세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은 길 위의 노래, 고개의 소리로서 백두대간을 따라 출현한 메나리토리 ‘아라리’로부터 시작되었고 토속민요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변환되는 변곡점에 있었으며 아리랑이 조선 팔도로 널리 확산하게 된 그 뿌리를 찾아가면 근대 아리랑의 종주격인 문경새재아리랑이 있다. 아리랑과 불가분의 관계인 1865년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와 문경새재와 물박달나무와 문경새재소리가 얽힌 역사, 그리고 1912년 문경지방 초등학교 교사에 의해 총독부에 보고 기록된 "문경풍년아리랑”은 아라리가 아리랑으로 바뀐 최초의 기록이다. 이런 흐름에 영향받아 1896년 역사 이래 최초로 아리랑 악보로 쓰이고 해외에 알려진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라는 사설이 들어 있는 헐버트 아리랑의 발표와 1926년 큰 인기를 끈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이 기폭제가 되었고 1930년 영남의 30개 시군을 대상으로 조사, 정리한 대구 출신 국학자 이재욱이 쓴 ‘영남전래민요집’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문경새재아리랑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통과 역사성 위에 송옥자 회장이 2001년부터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을 창립하여 지금까지 전승 및 보급활동을 하고 있고, 1980년에 설립한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과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의 ‘문경새재아리랑의 역사적, 민요사적 연구’를 거듭한 연구 성과에 의해 그 사실들과 중요성이 점차 입증되어 가고 있다. 아리랑이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2014년 11월 27일 북한도 "아리랑 민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고 이어서 2015년 9월 2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하였다. 이에 부응한 문경시는 위와 같은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2015년 12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경, 세상의 모든 아리랑을 품다”라는 주제로 "아리랑도시 문경”을 선포하였다. 이에 발맞춰 "아리랑도시 문경”에 걸맞은 시민 활동이 필요하다는 뜻을 가진 소수 시민이 발의한 후, 다수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어 아리랑의 조사, 연구, 발굴, 보존, 전승, 보급, 교육, 공연, 홍보를 통해 아리랑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2017년 6월 21일 발기인회, 2017년 6월 29일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창립총회 및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아울러 우리 지역 아리랑만이 최고이며 중요하다는 편협된 사고에서 벗어나 ‘아리랑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같으면서 다르고, 옛것이면서 오늘의 것이고, 우리의 것이면서 세계의 것’이라는 아리랑 속성을 일반화하기 위해 모든 아리랑을 인정, 존중한다는 의미가 포함된 그때 발표한 선언문은 아래와 같다.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선언문 아리랑은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상징하는 한민족공동체 문화의 정수임을 다시 한번 더 자각한다./ 이와 같은 아리랑이 우리나라 지역마다 전승되어 왔고, 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음을 확인한다. 문경시에는 아리랑고개인 문경새재가 실존하고,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간다.”라는 사설이 여러 지역 아리랑에서 불리는 등 근대 아리랑의 생성과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던 문경새재아리랑이 있어 아리랑 도시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런 바탕 위에 2015년 12월 13일 문경시가 ‘아리랑 도시’를 선포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며, 이를 높이 평가한다. 이와 같은 사실과 문경시의 "아리랑 도시” 연장선상에서 문경시민들의 자발적 아리랑 모임인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해 9인이 발기인회를 결성하고 추진한 결과 오늘 창립총회를 개최하며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을 존중한다. -.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이 문경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아리랑 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 아리랑 관련 사업에 문경시민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 문경새재아리랑 전승자를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야 한다. -. 문경새재아리랑 전승, 공연, 교육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아리랑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하여야 한다. 2017년 6월 29일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위원 일동 아도위는 창립 이후 창의적이고 시대에 부합하고 현실적인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서 추진하였다. 첫번째 사업으로 "아리랑은 문경시민의 기본 교양과목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명실공히 "아리랑 도시 문경”이 되려면 8만 시민이 우리 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불러야 한다. 문경시민들이 아리랑을 잘 부르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아리랑 부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우선 그 대상을 영향력이 큰 기관단체인 문경시, 문경시의회, 문경교육청, 문경문화원, 문경예총, 각 축제추진위원장, 읍면동장, 각급학교장, 각 사회・문화・예술 단체장에게 공문을 발송하여 각종 축제, 행사, 교육, 회의 때에 "문경새재아리랑” 공연과 학교에서는 특활 계획 시 아리랑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필수적으로 편성 시행해 줄 것을 당부, 호소하는 협조 공문을 발송하였다. 이후 아도위의 주요 활동 상황은 아래와 같다. - 2017년 11월 6일 문경새재아리랑제 workshop 진행 * 주제 : 아리랑, 문경에 다 모이다 (위원장: 좌장) - 2017년 2018년 문경문화원 주관 "아리랑학교” 운영 력-아리랑답사 주관 - 2018년 7월 30일 "제1회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학술토론회”개최 * 주제 : 문경새재아리랑 정체성과 위상 정립 - 2017년 9월∼2018년 3월 문경새재아리랑 "기준 악보” 제정에 자문단으로 참여 - 2018년 12월 10일∼11일 "디아스포라 아리랑제” 참여 * 고유제(최초), 가사 짓기 대회(부활), 평가보고회(최초) 주관 - 2018년 아리랑답사 및 교류-정선, 진도, 밀양 - 2019년 전국 최초로 시행한"찾아가는 아리랑학교” 주관/ 14회 402명 - 2019년 유명 관광지 "찾아가는 공연” 주관 - 2019년 위원 자질 함양을 위한 자체 "아리랑 경창대회” 개최 -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벌”참여(36명)/ 문경새재아리랑 홍보 - 2019년 "의병의 혼불, 아리랑” 제12회 문경새재아리랑제 참여 * 고유제, 가사 짓기 대회, 평가보고회 주관 - 2020년 7월 14일 "코로나아리랑” 발표회/ (장소:중앙공원 야외공연장) - 2020년 11월 5일 코로나아리랑, 조선일보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봉인 (문경새재아리랑 악보집, 아리랑영상물, 아도위 활동사진) - 2020년 11월 7일 ‘코로나아리랑’ 공연/ 에코랄라아리랑페스티발 초청공연 - 2021년 "찾아가는 아리랑학교” / 5회, (참가자 총 560명) - 기타 : 관내 외 아리랑 전승, 보급, 행사 참여 및 지원, 후원 - 수상 : 2019년 10월 2일 문경시장상, 2019년 11월 18일 경북도지사상 문경새재아리랑은 어느 특정인이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문경의 정체성을 지닌 문화이며 역사다. 올해가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아도위는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며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아리랑 도시 문경시민으로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활동할 것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기본적이고 정례적인 사업들은 내실과 변화를 추구하면서 새롭고 획기적인 사업도 기획 추진하고자 한다. 근래 본 단체는 국악인과 지역 가수들이 다수 합류하여 가단(歌壇)을 형성할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이에 우리 45명 아도위 위원들은 아리랑 도시 문경에서 ‘아리랑꽃’이 활짝 피어나는 그날까지 매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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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제1회 당산나무 할아버지 전국대회 개최문화재청은 제1회 당산나무 할아버지 전국대회를 9일 오후 2시 정부대전청사문화재청 대회의실(3동 204호)에서 개최한다. ‘당산나무 할아버지 제도’는 2022년부터 문화재청이 수행 중인 자연유산 마을공동체 활성화 제도의 하나로 자연유산 상시점검, 민속행사 임무수행 등 자연유산 보존‧관리‧활용에 앞장서 활동 중인 마을 대표에게 명예 활동 자격을 주는 제도다. 이번 대회에는지난 3월 발생한 울진 산불 현장에서 화마의 위협으로부터 자연유산 보존에 이바지한 공이 큰 ‘당산나무 할아버지’에게 천연기념물(식물) 보존‧관리‧활용 우수 유공문화재청장표창 수여,▲ 당산나무 할아버지 제도설명, ▲ 자연유산 민속행사 중간 성과와 우수사례발표,▲ 당산나무 할아버지 임명장과 명예 활동증 수여, ▲ 참가자 기념촬영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기후변화에 따른 천연기념물 식물의 생육환경 약화와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대비하여 그간 감염위험 등으로 소통이 단절된 지역공동체의 활력회복을 위해 자연유산을 매개로 한 보존 관리정책을 모색해 왔다. 그동안 문화재위원과 다양한 관계전문가 의견을 수렴하여 노거수(오래된 큰 나무)의 생육환경 변화(건조기간 지속에 따른 잎 마름 현상, 겨울철 낮은 기온의 지속으로 인한 동해현상 등)상시점검,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자연유산 민속행사의 임무수행을 하는마을 대표자에게 ‘당산나무 할아버지’(남녀를 불문하고 천연기념물을 수호하는 우리 옛 할아버지를 이름으로 명기함)제도화하여, 올해 첫 도입하게 되었다. 각 지역에서 자연유산 보존관리에 최선을 다해왔던 ‘당산나무 할아버지’는 이번 울진 산불 발생 당시천연기념물을 화재로부터 지키는 데도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화재청과 실시간 소통을 통해 화마 위기로부터 울진 화성리 향나무를 보존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화성 1리 이재욱 이장은 "당산나무 할아버지로 임명되지 않았다면 수령 500년이넘고 대대로 마을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수호신과도같은 향나무를 지켜내려는 생각을 하지못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자연유산의 보호에 더 책임감을 가지겠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제1회로 개최되는 이번 ‘당산나무 할아버지 전국대회’에서 문화재청은 울진 산불 예방 유공에 대한 표창과 자연유산의 보존·관리에이바지하는 당산나무 할아버지에 대해임명장수여와 명예 활동증을 부여하게 된다. 또한, 자연유산 보존·관리·활용 임무, 관계전문기관의정기 교육, 당산나무 할아버지 온라인 공동체를 통해서 서로 협력하여 천연기념물을 보존·관리 협력체계가 구축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이번 대회에는 문화재청 당산나무 할아버지 문구가 새겨진 확성기를 지급하여 자연유산 보존관리 일선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고, 2022년 서천 마량리동백나무 숲 당제 등 68건중 상시점검이 완료된 11건의 자연유산 민속행사 경과보고와 우수사례 등이 소개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자연유산 지역공동체 활동과 보존·관리의 일선에 선 당산나무 할아버지 제도를 더욱 확대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민속행사 전승에 마을주민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주체가될 수 있도록상호간 협력 체계를 갖추어 소중한우리의 자연유산을 아끼고 살피고 널리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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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아리랑의 어원(2)아리랑 기원설은 ‘백설(百說)’로 표현된다. 많다는 뜻을 넘어 아예 너나 나나의 주장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 주장은 두 가지의 방향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나는 처음부터 완성형인 ‘아리랑’으로 출현했다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점진적으로 아리랑으로 형성되었다는 주장이다. 비유한다면 전자는 창조론이고, 후자는 진화론인 셈이다. 1960년대까지는 전자가, 이후 오늘날에는 후자가 다수설이다. 필자 역시 후자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완성형 아리랑’이 19세기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치 진화론에서처럼 현생인류와 똑같이 생긴 화석이 밑바닥층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같다. 지난 3회에서 살핀 충북 중원 지역 농요 ‘아라성’이나 이승훈(李昇薰, 1756~1801)의 ‘농부사(農夫詞)’에 나오는 ‘아로롱(啞魯聾)’이 그렇다. 본 회에서는 ‘아리랑’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하여 어원설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은 곡명으로서의 ‘아리랑’을 말하는 것이지, 곡조와 사설인 노래 자체를 말하는 ‘아리랑’이 아니라는 점이다. 1912년 총독부는 식민정책 수립을 위해 조선 내 민정을 조사했다. ‘민요·속담·이야기 등에 대한 조사[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이다. 전통문화 전반에 관한 전국 대상 조사로 각 도 도지사를 통해 각 군수에게, 군수는 다시 관내 초등학교 교장을 동원하여, 간접 조사를 하였다. 당시 식민제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의 선행 사례를 답습한 것으로, 조선 내에서 식민지 경영 정책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 궁극적인 정한론(征韓論)의 실천 방략으로 위장술인 문(文)을 가장하여 무(武)를 준비한다는 문장적 무비론(文裝的 武備論)에 입각한 것이다. 이 조사는 근대 사회과학 이론을 적용한 공식적인 민속조사 첫 사례이다. 이 중 민요 분야의 아리랑 조사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평가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학계에 보고한 것은 1986년 김연갑의 ‘민족의 노래 아리랑’(현대문예사)에 수록함으로써인데, 전국 7개도(경상남도 제외) 조사 56편 아리랑 각편(各篇)이다. 이 조사에 수록된 곡명을 음가(音價) 표기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아리랑歌 ② 阿朗歌 ③ 아리랑打令 ④ 酒色界의 雜歌 ⑤ 어르렁타령 ⑥ 아르렁打令 ⑦ 어르렁타령 ⑧ 啞而聾打詠 ⑨ 아리랑타령 ⑩ 啞聾歌 ⑪ 阿朗歌 ⑫ 아르랑타령 ⑬ 아르릉타령 ⑭ 啞利聾打令 ⑮ 아리랑타령 ⑯ 어르렁打令 ⑰ 愁心歌 ⑱ 아르렁타령 ⑲ 아르랑打令 ⑳ 아르랑歌 이상과 같이 표음(表音) 상의 곡명이 총 20가지이다. ‘아리랑타령’과 ‘阿朗歌’, ‘어르렁타령’은 두 번 나오고, 나머지 14가지는 각기 다르다. 이 같은 현상은 1세대, 즉 30년 전후의 현상으로 보는데, 곡명이 지역마다 다르게 불렸다는 것과 결과적으로 ‘아리랑’이란 음가로 이행 단계임을 보여 준다. 오늘의 음가 ‘아리랑’을 쓴 경우는 네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이 시기부터 점진적으로 ‘아리랑’이 형성되어 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결과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아라리’에 ‘ㅇ’음이 첨가될 필요가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는 농사법 중 이앙법(移秧法)의 일반화이다. 이앙법은 볍씨를 논에 직접 뿌리는 직파법(直播法)과 달리 모판(못자리)에서 싹을 틔운 모(육묘)를 논에 옮겨 심는 농법으로, 모내기 철 가뭄에 주의하여 많은 품(노동력)을 들여 일시에 심는다. 이런 특성으로 모심는 이들 간의 동작을 통일하고, 허리를 굽혔다 펴는 고됨을 덜기 위해 노래가 필요했다. 이 노래는 멕이고 받는 형식에서 후렴이 필수임으로 조흥(助興) 음소인 ‘ㅇ’음이 첨가되었다. 그 결과 ‘아라리’에서 아로롱·아라성·아르랑·아르렁·아르랑 등으로 음전(音轉), ‘아리랑’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종 시대 7년간의 경복궁 중수(1865~1872)라는 역사적 배경이다. 이때 ‘아라리’가 공사장 부역꾼들에게 주고받는 노래로 불리면서 조흥음 ‘ㅇ’이 첨가되어 ‘아리랑’으로 전음되었다고 보는 주장이다. 두 가지 모두 개인적인 삶의 노래 ‘아라리’가 집단적인 노동요로 기능이 확대되면서 후렴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조흥 음소가 첨가되어 ‘아라리+ㅇ’이 되었다. 그리고 최종 완성형 아리랑으로 통일된 것은 1926년 영화 ‘아리랑’의 개봉으로 그 주제가가 전국화되면서 곡명에서나 후렴에서 ‘아리랑’으로 고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함에서 ‘아리랑’ 자체는 의미적 독자성을 갖지 못한다. 다만 ‘아리’나 ‘아라리’의 의미인 소리·노래·말이란 뜻이 있을 뿐이다. 극단적으로는 음소 ‘ㅏ’·‘ㅣ’·‘ㅇ’음의 결합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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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소리극 팔공산인 이재욱, 영남민요 향기로 피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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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 팔공산인 이재욱, 영남민요 향기로 피오르다영남민요연구회가 2005년부터 대구에서 매년 주최하는 ‘아리랑, 영남의 소리’의 무대가 꿈꾸는 시어터에서 7월 2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 펼쳐진다. 28일 대구에서 총예술감독을 맡은 배경숙 회장을 만나서 올해 열일곱 번째로 올려지는 아리랑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작품 ‘팔공산인 이재욱 영남민요 향기로 피오르다’는 일제강점기 영남전래민요를 연구한 팔공산인 이재욱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소극으로 이루어진 무대이다. 작품은 기승전결로 구성된 전 4장으로 이루어졌다. 제1장에서는 청년 이재욱 선생이 일본인 민요전공자 교수와 나누는 민요에 관한 대화를 통해 그 땅에 사는 백성의 심상이 담긴 민요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2장에서는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민요의 가치와 기록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장면이 강하게 각인된다. 제3장에서는 팔공산 자락에 살고있는 마을에서 모심기를 하는 장면에서 이재욱 선생이 민요조사를 완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제4장에서는 어두운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을 맞게 되어 이재욱 선생은 국립도서관 초대 관장직을 맡게 되지만 625전쟁과 함께 납북되는 과정에서 피살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팔공산아리랑으로 대단원을 맺는다. 연출은 예방대씨가 맡고 배우 이영찬이 주인공 이재욱 선생으로 분한다. 총예술감독을 맡은 배경숙 회장은 "이 작품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민요를 후세에 남기겠다는 이재욱 선생의 굳은 의지를 소극으로 만들어서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원로 민요학자는 영남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영남지역 민요만을 조사한 연구자는 이재욱 선생뿐이다. 영남민요 실기와 이론을 전공한 저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다”라며 강조했다. "그 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아리랑을 지어서 매년 부르고 있다. 이 소극 ‘팔공산인 이재욱의 아리랑’을 주제로 한 작품성은 매년 보완되어 올려지고 있다. 뮤직컬의 도시 대구에서 민요를 바탕으로 꾸며진 소리극이 부상하기는 어려운 여건이지만.....대구의 문화인물 이재욱과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공유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전 회원들과 노력하고 있다. 올해에도 많은 대구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다.” 2013년 시인 이창식의 <이재욱아리랑>이란 시가 그 하나다. 이 중 일부를 옮겨본다. "길 위의 영남아리랑 그를 따라 속 깊은 노래가 숨쉬다. 그가 듣고 적고 남긴 길 위의 노래화석 다시 살아나서 대구 길 위에 서다. 누구나의 길 위 꽉찬 연주의 힘을 통해 이재욱과 아리랑이 하나가 되어 배경숙의 아리랑판에서 놀다.” 팔공산인(八空山人) 이재욱(李在郁)이 명예롭게 소환되었다.‘납북인사’에서 최초의 민요연구 전공자·초대 국립도서관 관장· 『독서와 문화』 등의 저술가·대구의 근대문화인으로의 부활이다. ‘납북(拉北)’또는 ‘월북(越北)’인사들은 ‘이**’같은 복자(覆字)나 아예 가명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금기(禁忌) 인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이 금기를 배경숙이 영남의 아리랑으로 소환하여 금기를 풀어버렸다. 이 대목은 이재욱이 채록한 아리랑의 존재가 의미 있는 것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배경숙 회장은 정은하 선생에게 영남민요를 사사했다. 한때는 수년간 서울에서 대구로 선생을 모시고 경기민요도 배웠지만, 경기민요에 치우쳐서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영남민요를 지키기 위해 현장답사를 수행하였다. 기록의 중요성에 깨달아서 채보작업과 악보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무대로 올라간 영남민요의 작품성을 위해 편곡 작품으로 완성하여 세상에 꺼내놓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영남민요연구회는 매년 대구, 구미. 경산에서 지역 아리랑을 알리기 위해 구미의병아리랑제, 경산아리랑제를 개최하고 있다. 영남민요와 아리랑을 지켜가는 스승 정은하 선생의 길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다. 배회장은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실기는 물론 이론까지 정립하여 민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전통문화를 지켜온 소리꾼으로 학계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배경숙은 영남지역 민요 소리꾼이자 연구자, 영남지역 아리랑 작창자로서 아리랑축제와 같은 전통문화 주제행사 기획/연출가, 전래민요의 복원과 무대화로 창조적 계승을 선도하는 문화운동가이다.” 이런 평가는 2004년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원 국악과를 마치고. 이듬해 영남민요연구회 제1회 발표회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를 치루었다. 올해 제17회 발표회를 갖는 시기까지 17년간 전승활동의 결과를 말해준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과 스승 정은하 선생은 그가 가정사와 학업과 전승활동이 겹치는 힘든 시기를 어렵게 넘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편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임규익) 회원들도 전래되는 '모심기 소리'를 재현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매년 사할린에서 개최되고 있는 사할린아리랑제 무대에서 경산아리랑과 구미의병아리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회적 거리지키기 운동으로 전석무료 사전예약이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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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을 만난 동네창극’-공연내용 - 대구의 문화예술인물 ‘이재욱(1905~1950)’은 근대 최초 영남민요 연구자입니다. 민족문화 연구에 남다른 뜻을 품고 지역 소리들을 적극 수집하며 『영남전래민요집』 필사본을 남겼습니다. 이는 영남민요 연구회 배경숙 회장에 의해 『이재욱과 영남전래민요집 연구』, 『이재욱 전집 1·2·3』권이 출간되며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또한 자료집에 수록된 소리의 가사들은 작곡이 더해져 재탄생 되어 불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이재욱을 만난 동네창극’은 이러한 지역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이재욱 선생의 영남민요 소리에 춤과 연기를 더한 창극형식의 공연이며,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명홀 배우고(GO) 선정 프로그램입니다. 10월 5일 금요일 오후 6시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 대명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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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함께 하는 B-boy 한류콘서트 '通' 3월 29일일시 : 2007년 3월 29일(목) 오후 7:30 장소 :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주관 : 부산문화회관 주최 : 부산문화회관 문의 :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051 - 607-6110 1부 - 봄의 화사한 나들이를 위한 창작관현악 ‘춘광여정’을 시작으로 새봄과 어울리는 국악관현악곡들을 선곡,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우리 음악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부산시립무용단의 춤과 함께 어우러질 봄의 화사한 나들이를 위한 창작관현악 ‘춘광여정’은 작곡가 이준호가 화창한 봄빛을 맞으며 자연의 순리대로 선율을 옮기고, 필이 나가는 대로 장단을 잡아 작곡한 곡으로 우리 악기들은 개성을 잘 살려 아름다운 봄빛을 표현했다. 두 번째 무대는 부산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는 가야금연주자 이문희의 협연으로 눈이 오는 이른 봄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그린 17현 가야금협주곡 ‘춘설’을 들려준다. 이문희는 부산시무형문화재 제8호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이수자로 우리 음악의 맥을 잇고 있다. 1부 마지막 무대는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거문고 수석 이대하가 북한 흥남 제련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봄을 주제로 한 거문고 협주곡 ‘출강’을 들려준다. 북한 음악인 김용실이 작곡한 ‘출강’은 1994년 이세환에 의해 국악계에 소개되었다. 작곡자 김용실은 사회주의의 사실을 담기 위해 실제 흥남제련소에서 얼마간 노동자와 함께 생활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세환은 하준홍을 통해 이 북한 거문고 음악 ‘출강’의 악보와 테잎을 구할 수 있었고, 이 작품은 1995년 금율악회 정기연주회에서 처음으로 재연되었으며 이후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되어지고 있다. 2부 무대는 우리 음악의 신명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무대이다. 유은선 곡 세계인을 위한 창작관현악 ‘환희’에 이어 신춘음악회의 하이라이트인 최상화곡 B-boy와 풍물을 위한 창작관현악 ‘상쇠’가 연주된다. 세계의 정상, 한류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 오른 현대 B-boy와 우리의 전통 B-boy라 할 수 있는 풍물이 만나는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무대이다. 우리의 전통 B-boy를 대표해 버슴새예술단이, 한류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B-boy이를 대표해 드리프터즈 크루가 부산국악애호가들과 만난다. 장재봉, 신종훈, 김덕현, 이인우, 이재욱, 신광현, 김정환, 손문, 김홍렬이 활동하고 있는 드리프터즈 크루는 2004년 배틀 오브 더 이어 코리아 퍼포먼스부분 1위를 시작으로 2005년 MBC 스타 댄스 배틀 1위, 20006년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퍼포먼스 부분 4강, 퍼포먼스 오브 더 이어 KOR 우승, 브라질 BC ONE 1:1 초청 BATTLE 우승했다. 또 UK B-boy Championship KOR와 배틀 오브 더 이어 KOR에 우승해 영국과 독일 본선에 출전하여 2위와 3위를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박현호, 김대원, 박순호, 최정민, 이형곤, 김영찬, 성현우, 김윤호 등으로 구성된 버슴새예술단은 2002 부산합창올림픽대회 개막식 공연 비롯 아 태 장애인 경기대회, 아시안게임 1주년 축하 공연, 2004 ASIA MONTH 공연(일본 후쿠오카),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신년음악회, ITU EXPO IN 2005 기념 행사 등 다양한 무대에서 우리의 신명과 흥을 풀어낸 부산의 젊은 예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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